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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유전병 '태움'...자살로 이어져

태움, 업무과다가 주요인 '간호협회와 정부차원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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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포스트
기사입력 2018/02/19 [01:00]

한 간호사의 죽음이 ‘태움’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5일 오전 10시 40분 쯤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서울아산병원 소속 간호사 박 씨(27·여)가 숨진 채 있는 것을 단지 주민이 발견해 신고 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점,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 메모 등으로 볼 때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메모가 유서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경찰은 “남자친구, 유가족, 병원 측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 중에 있다“고 밝히면서 통상적으로 담당 간호사가 반납해야 할 약을 “병원과 전혀 관계없는 남자친구에게 반납을 부탁할 때 자살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태움’이란 간호사들 사이에서 ‘재가 될 때까지 태워서 없앤다’는 말의 은어이다. 선배 간호사들이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 문화다. 이른바 ‘찍힌 후배’를 혹독하게 훈련시키거나, 부당하게 일을 몰아주는 문화를 말한다. 

 

박 씨가 숨진 직후 간호사 온라인 커뮤니티(널스스토리)에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B씨의 글이 게재됐다. B씨는 게시 글에서 “제 여자 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라며 “간호부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 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라고 글을 게시했다.

 

이 글에서 B 씨는 ▲ “출근하기가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라고 한 점 ▲ “저에게 사수가 가르쳐 주신 것이 없고 다른 간호사분이랑 근무할 때는 너무 많이 배웠다”라고 한 점 ▲ 병원에서 나오며 “손을 벌벌 떨면서 다가오는 여자 친구를 봤다”는 점 ▲ 반납해야 할 약을 자신이 직접 반납하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대신 반납해 달라고 부탁한 점 등을 ‘태움’의 근거로 제시 했다.

 

위와 관련 익명의 병원관계자는 "1차 자체 조사 결과 유가족이나 남자친구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 등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혀 간호사 온라인 커뮤니티(널스스토리)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익명의 회원은 “걔네(아산병원) 입장에서는 태움이 잘못된 게 아니거든”이라며 "(병원 측은) 무엇이 잘 못 인지를 애초에 모르고 있는데 뭐(조사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 게시판에는 “아무런 일이 없는데 사람이 그냥 죽나요”, “사람이 죽었는데 아직도 말장난 하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억울하고 억울해서라도 어떻게든 공론화 시키자”는 등 댓글이 줄을 잇고 있으며, 이들은 저녁 6시 소셜미디어 공론화 공동행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2013년 ‘정신 간호 학회지’에 따르면 근무 1년 이내 간호사 중 60%는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6년 대한간호학회지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에 관한 근거이론 연구'에서 '병동의 조직문화와 간호업무의 특성은 괴롭힘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되거나, 괴롭힘이 대물림되는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간호사계의 태움이 고질적인 문제임을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전직 K대학병원 4년차 A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이 매우 취약하다”며 “태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 간호사의 업무과다 ▲ 근무 시간외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 교대근무 특성상 인계자의 업무가 미숙하면 인수자의 업무 지연 발생 ▲ 예민해진 환자와 보호자 상대로 인한 스트레스 ▲ 실수는 곧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정신적 긴장상태 ▲ 불규칙적인 근무로 인한 정신적, 체력적 부담 등을 고질적 문제로 지적했다.

 

또 A간호사는 “보건복지부와 OECD '건강 통계 2015'(Health Data 2015)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2.2명으로 평균 3.3명 보다 적고, 간호사 수는 5.2명으로 OECD 평균 9.1명보다 적다”라며 “한국의 의료진은 매우 과중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위가 높은 의사 업무가 간호사에게 전가되어 간호사는 더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대한간호협회와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없으면 이와 같은 자살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환자안전을 위협한다”라고 말했다.

 

[현장취재 심현지 기자 civiljeb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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