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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골든타임 선내 진입 의도적으로 막았다? [304목요포럼|특별연재#7]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골든타임... 특별수사단 설치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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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기사입력 2019/04/29 [15:19]

▲ 해군해난구조대(SSU)     © 이희정 기자


 

침몰한 세월호, 선내 진입에 대한 의문

 

 

❙ 4월16일 세월호 침몰 후 수중 구조자 단 한 명도 없었다.

❙ 골든타임 때 전문 구조인력 충분했다.

❙ 최 정예 잠수요원들,  안전 이유로 잠수 불가, 선내 진입 구조 활동 하지 않았다.

❙ 사고 직후 16~19일은 선내 진입불가 방침, 20일 이후 선내 진입케 한 이유는?

❙ 에어포켓이 빠져 선체 내 해수 유입 없어 오히려 선내 접근용이 했다.

❙ 세월호 선수 고정 후 수중 수색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 해난사고의 구조 책임자 전면 재수사, 진상규명-골든타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4월16일 침몰 이후 단 한 명의 구조자 나오지 않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0여 명의 탑승객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사실에 당시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은 수중 구조 활동에 큰 기대를 걸었다. 생존자가 있다면 단 한 명이라도 구조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4월 16일 10시31분 세월호가 침몰한 후 단 한 명의 구조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직까지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골든타임 때 전문 구조인력은 충분했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김광진 의원실 자료(국방부)에 따르면 침몰 현장에 투입된 해군(SSU·UDT) 구조인력이 16일에 45명, 17일에 239명, 18일에 260명, 19일에 253명으로 확인 됐다. 또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에 제출한 해경 자료에 따르면 투입된 해경구조대는 16일에 189명, 18일에 283명, 19일에 289명으로 확인됐다. 즉, 세월호 침몰 현장에 전문구조인력은 충분했다.

 


그러나 해경은 계속해서 ‘최악의 수중 환경’으로 구조 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결국 16일부터 19일까지 ‘세월호 선내 구조 활동이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 4일째가 돼서야 4층 객실 유리창을 깨고 3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최 정예 잠수요원들,  안전 이유로 잠수 불가. 선내 진입 구조 활동 하지 않았다.

▲ 2014년 6월 5일 광주지방검찰청에 제출한 국방부 감찰단 자료      © 이희정 기자

 

▲ 2014년 5월 15일 감사원 <세월호 수중수색 감사관 요구관련> 목포서 122구조대 해경자료    © 이희정 기자

 

해군·해경의 구조세력은 국정조사자료와 검찰 수사 자료를 통해 ‘침몰 현장의 대조기, 강조류와 와류, 제한된 시계, 선체 내 해수 유입’을 이유로 수중 수색, 선내 진입을 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또 ‘세월호 수중 수색 세부현황’을 보면 16일부터 19일까지 해군·해경 수중 활동은 대부분 ‘강조류와 저시정으로 퇴수, 가이드라인 설치’가 전부였다.

  

▶세월호 침몰 직후 16~19일은 선내 진입불가, 20일 이후 선내 진입한 이유는?

 

▲ 국립해양조사원 해양관측과 사고해역의 조석주기, 정조기(전류시), 유속 등 자료<광주지검>     © 이희정

 

▲ 국립해양조사원 해양관측과 사고해역의 조석주기, 정조기(전류시), 유속 등 자료<광주지검>     © 이희정

 

국립해양조사원의 유속표에 의하면 첫 번째 대조기는 4월 16일 부터 18일까지, 두 번째 대조기는 4월 29일 부터 5월 2일까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4월 19일 부터 21일까지 중조기의 유속을 보면 첫 번째 대조기와 유속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군·해경은 대조기 인 4월 16일 부터 4월 18일까지 해상에서 29명을 수습했고, 중조기인 4월 19일 부터 4월 21일까지 해상에서 11명 수습, 19일 4층 B19 객실의 창문을 깨고 진입해 수습한 3명을 제외하면 총 44명을 선내에서 수습했다.  또 대조기 인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해상 1명 수습,  선내 집입 해 38명을 수습했다. 종합해 보면 전류(조류가 흐르는 방향을 바꾸는 일) 시와 최 강류(강물의 흐름, 강물의 유속이 가장 빠를 때)사이 잠수를 실시한 것으로  최악의 조건에서도 잠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기인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조류가 강해 잠수가 불가능하다고 밝힌 해군·해경이 대조기와 유속이 거의 유사한 4월 19일 부터 4월 21일 중조기때는 선내에 진입하여 시신을 수습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대조기인 4월 29일 부터 5월 2일에도 역시 선내에 진입하여 시신을 수습했다. 

 

해군·해경이 선내 진입을 하지 못했던 16일에서 19일 이후 선내 진입을 했던 시기에 해저지형이 바뀌거나 세월호의 침몰 위치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유속이 강한 자연환경, 침몰 현장에 있었던 해경, 해군의 인력, 잠수 실력과 잠수장비도 같았다. 참사 초기 세월호 침몰 현장이 유속과 와류가 강하고 탁도가 좋지 않아 잠수를 할 수 없다고 말했던 해군과 해경에 의하면 19일 이후에도 역시 선내에 진입하여 희생자를 수습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해군과 해경은 20일부터 선내에 진입했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잠수 불가’상황에서 ‘선내 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달라진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일 언딘이 동원한 2003금호바지선이 침몰 현장에 설치되었다가, 23일 언딘 리베로바지선이 설치됐다. SSDS(표면공급식잠수장비)등의 잠수장비 운용과 많은 잠수사들의 지원인력 운용에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그러나 천암함 침몰당시 SSU가 더 강한 유속에서도 고무 단정만을 이용해 수중 수색을 했기 때문에 ‘바지선이 없어 침몰 초기 선내 진입을 할 수 없다’거나 ‘수중 수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 금호 바지선     © 이희정 기자

 

▲ 언딘 리베로 바지선     © 이희정 기자

 

▲ 표면공급식잠수장비(SSDS)     © 이희정 기자


두 번째는 18일 오후 1시 25분경 세월호 선수가 해수면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선체가 해저로 전도된 것이다. 침몰 현장에 강한 조류와 와류는 계속 있을 수 있으나 세월호가 전도되면서 대량의 에어포켓이 빠져 선체 내 해수 유입이 거의 없어지고 오히려 선체가 안정되어 ‘선내 진입하기 좋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에어포켓이 빠져 선체 내 해수유입 없어지고 오히려 선내 접근용이

실제 광주지방검찰청에 제출한 국방부 감찰단 답변서에 “선체 내로 몸이 빨려 들어가려 하자 긴급 상승함. 이후 잠수작업이 가능한 조건이 될 때까지 현장에서 대기”라고 답변한 내용이 있다.

 

4월 16일 해경 TRS교신에서 17시01초 현장지휘함장(3009) : “여객선에 공기가 많이 빠져 나오고 있어 에어가 다 나오고 나서 선내 수색 예정 해경·해군 수색 중 철수 대기 중”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도로 숙련된 훈련을 받은 해군·해경 구조대는 세월호에서 에어포켓이 소멸되고 해수가 계속 유입되는 상황이라 ‘안전하게 잠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아 대기’했다는 것이다.

 

침몰한 세월호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선수가 떠 있었다.

선체가 완전히 가라앉지 앉게 고정을 하고 잠수가이드라인을 설치한 후 잠수사들이 격실을 분할해서 수중 수색하기에 선내 접근이 용이한 상황이었다. 

 

▶세월호 선수 고정하여 수중 수색 할 수 있었으나 골든타임 놓쳐...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18일까지 해수면에 떠있던 세월호 선수를 충분히 고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으나 해군과 해경은 세월호 선수를 고정하지 않았다

 

 

국방부 감찰단 회신자료에서 SSU대원의 16일 18시 첫 잠수 활동에 대해 “잠수사를 선체 위에 내려주었고, 잠수사는 경사진 선체 우측면을 미끄러지듯이 타고 내려가 선수부에서 가장 가까운 3층 격실 진입로 부근에 도착하였으나 잠수사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하잠색(잠수용 가이드라인)을 3층과 4층 사이(난간)에 연결하고 18시 10분 상승(퇴수)함”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강조류, 와류, 선체 내 해수유입으로 잠수가 불가하다고 말한 해군이 해수면에 떠 있던 선체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 수중 수색을 할 수 있도록 잠수 투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에어포켓 희박하다"는 해경 발표와 달리 에어포켓은 계속 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에어포켓이 희박했다는 해경의 발표와 달리, 세월호는 침몰 후에도 계속 선체 내부로 해수가 유입됐다. 세월호 내에 해수가 유입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은 해수가 유입되는 만큼 세월호 내 에어포켓이 계속 밖으로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 숙련된 해군·해경은 ‘잠수사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이유로 선내 진입해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고, 끝내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난사고의 구조 책임자 전면 재수사, 진상규명-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해군과 해경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극한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좋은 장비와 고도의 훈련을 받는다. 해군과 해경은 해난사고의 구조 책임자로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초기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고, 골든타임은 흘러갔다. 

 

더 늦기 전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을 설치해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묻고, 참사 관련 기관들을 철저히 전면 재수사 해야 하는 '진상규명-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이 필요한 이유 관련기사  http://www.civilpost.net/1767

 

 [기획의도]

<304목요포럼>은 참사 1주기일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입니다세월호는 왜 '구할 수 있었던 참사'였는지에 대해 해결 되지 않은 의혹들을 남긴 [구할 수 있었다연재에 이어 어렵게 구한 자료를 근거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골든타임'-재수사가 필요한 이유]를 시빌포스트와 공동으로 특별연재 합니다.

 

 

                                                            [자료-304목요포럼 | 편집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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