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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목요포럼| 특별연재 ③]세월호참사5주기 '구할 수 있었다'

#3 -에어포켓은 최대 72시간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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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기사입력 2019/03/28 [14:45]

 

 

❙ 구조 인력이 충분했음에도 에어포켓이 없다는 전제로 구조 소홀

❙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 희박, 생존자 없는 것으로 판단

❙ 침몰 시간이 경과 되어 에어포켓 소멸

 

 

 

카페리 선체 특성상 수밀구조가 아니어서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2014년 세월호참사 국정조사에서 해경은 '전복선박에서 구조 인력의 도움 없이 에어포켓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 전기가 끊어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통로가 어딘지,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천장인지 바닥인지 분간하기 곤란함’이라고 자료를 제출했다. 

 

 

 

처음 선내로 진입했던 시기는 세월호 침몰 4일 째 되는 날이었다. 해경의 발표대로 세월호는 과연 ‘카페리 선체 특성 상 수밀 구조가 아니어서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이 희박’했던 것일까 

 

420~ 25일 현재까지 세월호 탑승자 시신 수습현

일자

성 별

수습장소

침몰선체

해상

3

4

5

표류

부상

20

22

19(학생19)

3(학생3)

 

16

 

6

 

21

29

6(학생1, 승객5)

23(학생18, 승객5)

10

18

 

1

 

22

36

14(학생11, 승객3)

22(학생21, 승객1)

6

30

 

 

 

23

36

23(학생23)

13(학생11, 승객2)

 

36

 

 

 

24

21

6(학생5, 승객1)

15(학생12, 승객3)

12

9

 

 

 

25

5

 

5(학생5)

1

4

 

 

 

-세월호참사 국정조사 정진후의원실 자료-

 

▲ 3층 도면     © 이희정

 

▲ 4층 도면     © 이희정

 

▲ 5층 도면     ©이희정

 

2014년 4월 23일 진도군청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고명석 대변인은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3층과 4층의 다인실을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탑승객이 몰린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의 선체를 뜯어냈지만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브리핑 시 발표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4월 20일부터 선내에 진입하여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4월 20일부터 에어포켓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낸 23일까지 3층과 4층의 일부 객실을 수색했으나, 5층은 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침몰 다음날까지 세월호 선체로 계속 해수가 유입되고 있었고 해수가 유입되는 공간의 공기는 밖으로 빠지고 있었다

 

4월 16일 해경 TRS 녹취록 17:00:01 - 3009함장 

-현재 세월호가 계속 물방울이 지금 공기가 많이 빠져나와 있어요. 선내 수색을 지금 하지 못하고 현재 현장에서 철수한 상태임. 현장에서 대기해가지고 에어가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상태에서 다시 재 시도할 예정임. 지금 해경하고 해군이 합동으로 선내 수색하는 도중에 에어가 계속 빠져서 현장에서 일단 철수하고 현장에 가까이 대기하고 있 는 상태임, 3009는 현재 세월호 옆에 500야드 옆, 세월호에서 공기가 많이 빠져나오니까 일단 작업을 중단하고 철수상태로 현장에서 대기중에 있음. 이상. 

침몰 7시간 30분이 지난 시각 

 


 

 

 

해경은 19일 이전까지 탑승객들의 생존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6일 대검찰청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 설명자료 16p. > 3. 관련 의혹 수사결과

-언딘을 우선적으로 잠수시키기 위해 민간잠수사들을 구조 활동에서 제외시킨 것은 아닌지

-사고 당시 세월호 사고현장에 출동했던 민간잠수사 H가 언딘의 협력업체 관계자임에도 다른 민간잠수사들과 마찬가지로 투입하지 않은 점, 사고 다음 날 아침까지는 강조류 및 해수 선체유입으로 인해 해경과 해군조차도 제대로 된 잠수 구조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점 등에 비추어, 해경이 언딘을 우선적으로 잠수시키기 위해 민간잠수사의 투입을 막았다고 보기는 어려움

 

●2016년 3월 14일 인천지방법원 2014고합931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2015고합661(병합) 이춘재 경비안전국장 증인신문 녹취서

문: 증인은 4월 18일 21시 경에 기포가 대량 발생하면서 기름이 유출된 시점에, 즉 배가 옆으로 누운 시점에는 생존능성이 전혀 없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렇게 진술한 바 있지요?

답: 개인적으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문: 증인은 검찰진술에서 4월 19일에 생존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해경청장 김석균에게 시신수습을 위한 팀을 그대로 운용하고, 인양을 위한 별도의 T/F팀을 꾸려야 한다고 건의한 사실이 있지요?

답: 예.

  

4월 18일 오후 1시 25분 경 세월호 선수가 해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옆으로 전도 되는 과정에서 21시 경 ‘대량의 기포’가 발생했고, 이를 목격한 이춘재는 ‘4월 19일 탑승객들의 생존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에는 분명 에어포켓이 존재했다.  침몰한 모든 선박은 여객선, 로로선, 어선 등 선박의 종류와 상관없이 에어포켓이 형성된다. 해경의 발표처럼 ‘카페리 선체 특성상 수밀구조가 아니어서 에어포켓이 희박’했던 것이 아니라, 침몰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세월호에 있던 에어포켓이 소멸됐던 것이다. 

 

 

더욱이 해경은 에어포켓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 할 당시 세월호에 대한 확인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세월호국정조사에 제출한 자료에도 역시 '전복선박에서 구조 인력의 도움 없이 에어포켓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 2014년 6월 10일 세월호 국조특위 제출 자료(해경)     © 이희정

 

그러나 해경의 자료와 달리 침몰현장에는 '에어포켓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인력'이 충분했다. 

 

 

 

 

4월 19일까지 민··군 구조팀 누구도 세월호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고, 세월호의 에어포켓은 계속 소멸되고 있었다.

 

“송이가 수습되어 나왔을때 손바닥은 물에 퉁퉁 부어 있었고 손등은 말라 있었어요. 가냘픈 체구였는데 남자들이 입는 큰 점퍼와 바지를 두겹으로 입고 나왔어요” 

 

 

 

에어포켓 유무에 관련해서는 아직도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참사 4일째 돼서야 선내 진입을 할 수 있었던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세월호를 면밀히 수색하지 않았고, 심지어 5층은 진입조차 하지 않고 에어포켓이 없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기획의도]

<304목요포럼>은 참사 1주기,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입니다.

세월호는 왜 '구할 수 있었던 참사'였는지에 대해 해결 되지 않은 의혹들을 남겼습니다. 아픔마저 희미해져 가는 세월호참사 5주기 즈음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을 되짚어 보고자 시빌포스트와 공동으로 특별연재를 합니다.

 

 

 

 [자료-304목요포럼 | 편집 - 이희정 기자]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특별수사단 설치를 위한 국민서명

https://goo.gl/forms/kn2XlF2TvQMkUyaF3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특별수사단 설치를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7697?navigation=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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